대한제국 황실 대례복이 세계 최고의 무대 위에 섰다 —
저는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챙겨보는 편이지만, 이렇게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2026년 3월 15일(현지 시각) 미국 LA 돌비 극장. 주제가상 수상작이 발표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별 기대 없이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대 위로 등장한 한 사람의 의상에 저도 모르게 "잠깐, 이게 뭐야?" 소리가 나왔거든요. 새하얀 바탕 위로 황금빛 문양이 흘러내리는 드레스. 뭔가 익숙하면서도 전혀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이었어요.
그 주인공은 바로 이재(EJAE, 본명 김은재).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OST '골든'으로 제98회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한 가수 겸 작곡가입니다. 그런데 이날 전 세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수상 소식 못지않게 바로 그 드레스였어요. "어디 브랜드야?", "저 문양이 뭔데 이렇게 고풍스럽지?" 하는 반응이 SNS를 순식간에 채웠고, 저도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관련 자료를 줄줄이 찾아봤습니다.
그 드레스에 담긴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나면, 단순히 "예쁘다"는 말로는 절대 부족하다는 걸 알게 돼요. 100년이 넘는 역사와 한국인의 정체성, 그리고 한 아티스트의 12년 여정이 한 벌의 옷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드릴게요.
[사진 출처: 서울신문 , 2026.03.17, 이재 오스카 드레스 ‘고귀한 무궁화’…“대한민국 황실 대례복”, 권윤희 기자]
이 드레스가 그냥 드레스가 아닌 이유
이재의 드레스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르쥬(LEJE)가 이번 오스카 무대를 위해 맞춤 제작한 특별 의상입니다. 디자인은 르쥬의 강주형·제양모 디자이너가 직접 맡았고, 스타일링 디렉팅은 제프리 진과 현석이 함께했어요.
그런데 이 의상의 진짜 놀라운 점은 출발점에 있습니다. 의상의 출발점은 100여 년 전 대한제국 황실의 대례복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905년(광무 9년) 그려진 대한제국 관료이자 독립운동가 김가진(1846~1922)의 대례복, 즉 2등 칙임관 관복에 적용된 무궁화 문양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오해하실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럼 그냥 전통 의상을 그대로 재현한 거 아니야?"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드레스는 역사적 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이에요. 르쥬 측은 "헌트릭스에서 선보였던 이재의 제복을 잇는 또 하나의 이야기이자, '골든'이 말하는 '빛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시도"이며 "전통의 시간과 현대적 감각을 연결하려는 디자인 철학 속에서 완성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드레스를 뜯어보면 보이는 것들
이 의상이 특별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무심코 지나치면 그냥 '예쁜 화이트 드레스'지만, 알고 보면 모든 디테일이 의도된 메시지를 담고 있거든요.
드레스의 바탕색인 순백은 백의민족을 상징하며, 전면과 소매에 더해진 굵은 금동 장식은 고대 한국의 금관을 직접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색깔 하나로 표현하면서, 거기에 왕족의 위엄을 상징하는 금빛을 더한 거예요. 이 조합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선언입니다.
드레스 앞면과 양 소매에 있는 금동 장식은 무궁화와 덩굴 문양 당초문을 묘사했는데, 이 모든 장식은 한국 금속공예 장 두석장 장인의 손을 거쳐 완성됐습니다. 3D 프린팅이나 기계 가공이 아니라, 실제 장인이 손으로 한 땀 한 땀 작업한 공예품이라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에요.
브랜드 측은 "의상의 중심에는 한국의 국화 무궁화가 자리한다. 수없이 피고 지면서도 다시 피어나는 이 꽃은 영원과 끈기, 사라지지 않는 생명을 상징한다"며 "그 주변에는 생명의 흐름과 번영을 의미하는 덩굴 문양 당초문이 이어져 무궁화가 지닌 영원의 의미를 더욱 확장한다"고 했습니다.
무궁화라는 선택이 특히 의미심장합니다. 단순히 예쁜 꽃이라서 쓴 게 아니라, "끊임없이 피고 또 피어나는" 그 상징성이 이재 본인의 여정과 정확히 맞닿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체 실루엣은 극 중 헌트릭스 멤버 루미가 가진 '빛'의 상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케데헌이라는 작품, 그 안의 캐릭터, 노래의 메시지, 그리고 이재 자신의 이야기가 드레스 한 벌 안에 모두 녹아있는 셈이죠.
이재라는 사람, 이 무대가 더 빛나는 이유
이재 개인적으로는 데뷔에 실패하고 회사에서 방출된 장기 연습생에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애니메이션의 OST를 부른 가수이자 공동 작곡가가 되어 오스카를 수상한 상당히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재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으로 출발해 12년의 무명 시절을 견뎌냈습니다. 트와이스·에스파·르세라핌·엔믹스 등 K팝 대표 그룹의 곡을 써온 작곡가로 먼저 이름을 알린 뒤 지난해 10월 솔로 데뷔 싱글 '인 어나더 월드'를 발표하며 아티스트로 전면에 나섰습니다.
12년. 이 숫자가 품은 무게를 생각해보면 수상 소감이 더 울림 있게 다가옵니다.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이재는 눈시울을 붉히며 "제가 어릴 때 사람들은 제가 K팝을 한다고 놀리곤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우리 노래와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다. 정말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 K팝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놀림받았던 아이가,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장 빛나는 무대 위에서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로 상을 받는 순간. 그 드레스 위에 수놓인 무궁화가 왜 "끊임없이 피어나는 꽃"이어야 했는지, 이 맥락을 알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사진 출처: 서울신문 , 2026.03.17, 이재 오스카 드레스 ‘고귀한 무궁화’…“대한민국 황실 대례복”, 권윤희 기자]
그 날 돌비 극장에서 벌어진 일
드레스 이야기만큼이나 놀라웠던 건 이재의 오스카 축하 공연이었습니다. 이날 케데헌 삽입곡 '골든'을 부른 세 멤버가 무대에 오르기 전에 댄서들 전원이 한복을 입었으며, 일부는 갓을 쓰거나 풍물 의상을 입고 재해석한 전통 무용과 사물놀이, 판소리를 공연했습니다. 또한 시상식에 참석한 이들 모두가 한국 공연의 대표적 문화 중 하나인 응원봉을 들고 공연을 즐기는 장면도 펼쳐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엠마 스톤, 기네스 펠트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응원봉을 흔드는 장면이라니. 2년 전이었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풍경이 실제로 돌비 극장에서 펼쳐진 거예요. 이 장면 하나가 어떤 긴 설명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케데헌의 성과 자체도 경이로운 수준입니다. 글로벌 누적 시청 5억 회를 넘기며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제치고 역대 넷플릭스 콘텐츠 가운데 최고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작품 속 OST도 인기를 끌어 '골든'(Golden)은 K팝 장르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의 정점에서 오스카 주제가상과 장편 애니메이션상, 2관왕을 달성했습니다.
르쥬(LEJE)라는 브랜드, 이 드레스가 남긴 것
이번 이재의 오스카 의상을 계기로 르쥬(LEJE)라는 브랜드도 큰 주목을 받게 됐어요. 사실 이재와 르쥬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르쥬 측은 "오스카 무대를 위해 제작한 의상은 케데헌 헌트릭스의 무대의상인 제복과도 연결되며, '골든'이 담은 의미와도 이어지는 것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단발성 협업이 아니라, 작품과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함께 만들어온 브랜드라는 이야기죠.
이 드레스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한복'도 아니고 '서양 드레스'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언어로 한국의 정체성을 표현했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을 표현하는 의상 = 한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르쥬의 선택은 그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넘어섰어요. 100년 전 역사에서 영감을 가져와 현대적인 실루엣 위에 장인의 손길을 입히는 방식으로,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양쪽을 모두 담아냈으니까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창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며 — 무궁화가 다시 피어났다

[AI 생성 이미지]
이번 시상식은 영화 '기생충'이 주요 부문을 석권했던 2020년에 이어, 다시 한번 한국인들과 한국 교포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기록됐습니다. 한국 교포들이 제작한 한국 문화·전통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과 그 삽입곡이 최초로 수상을 했고, 특히 오스카 역사상 처음으로 축하 공연에서 한국 국악이 등장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모든 역사적 순간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이재가 입었던 드레스는, 그래서 더욱 완벽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05년 대한제국 관복의 무궁화 문양에서 영감을 받아 2026년 세계 최고의 무대 위로 걸어 나온 그 옷. 피고 지면서도 다시 피어난다는 무궁화의 상징처럼, 12년을 버텨온 한 아티스트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오랫동안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온 K팝 문화의 여정처럼.
이재는 아카데미 무대가 끝난 뒤 "한국에 있는 팬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정말 영광이고, 이 노래와 영화를 모두 한국에 바친다"며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 말이, 그리고 그 드레스가 전하는 메시지가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빛나는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긴 시간 속에서 천천히 태어난다고 했죠. 이재의 오스카, 그리고 그날의 드레스는 그 말을 몸소 증명한 순간이었습니다.
본 포스팅은 보그 코리아(2026.03.17), 위키트리, 헤럴드경제(2026.03.16), 아시아경제(2026.03.17), OSEN·미주중앙일보(2026.03.16) 등 공신력 있는 매체의 보도 및 르쥬(LEJE) 공식 SNS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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